ETC/Eoschron 2019. 11. 16. 01:15

[Eoschron x Isis] 우연의 장난 -5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에요, 아저씨. "
" 뭐가 말인가. "

침대에 걸터앉아 서류를 읽던 에스쿠로는 안경을 추켜 올렸다. 문을 등진 이시스에게 시선을 두다 서류를 보는 동안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고 이시스는 제 모자를 손에 들곤 검지 손가락에 걸어 돌렸다. 

" 그렇잖아요. 앞뒤 없이 몇십년만에 본 사람한테 대뜸 딸 하라고 하면 네, 그렇겠습니다 할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
" 넌 그렇겠다고 대답했지. "
" 그게 대답이에요? 아저씨가 내 말을 귓등으로 안 듣는것 때문에 이어진 말이죠. "

역시나 원하는 반응이 없자 에스쿠로에게 제 모자를 던진 이시스는 팔짱을 꼈다. 짐짓 화난 듯 하자 모자를 받아 든 에스쿠로는 고갤 들었다. 

" 아저씨가 이야기 한 보호막, 필요 없다는건 본인이 잘 아실텐데요. 혼자서 살아남은게 벌써 20여년이에요. 보호막이란건 아저씨랑 처음 만났던 시절에나 필요해요. "

그 때 도와주지 그랬냐며 툴툴거리는 말에 모잘 옆에 내려둔 에스쿠로는 서류를 읽었고 머릴 짚은 이시스는 말이 안 통한다며 밖으로 나섰다. 나가자 마자 모자를 가지러 들어온 이시스가 부러 크게 닫는 문 소리가 울릴 때 고개를 든 에스쿠로는 읽던 서류를 넣어 봉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때 맞춰 울리는 전화벨. 기다리던 전화인 듯 바로 받은 그는 지금 가고 있다고 답하며 방을 나섰다.



" 못 보던 새에 스타일이 바뀐겁니까? "
" 별 것 아닐세. 이 서류나 잘 처리하게. "

서류봉투를 받은 이는 봉인을 보다 가방에 넣는걸 보며 일어선 에스쿠로가 몸을 돌리자 상대는 입꼬릴 올리며 물었다.

" 결과는 언제나처럼 우편함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
" 그래. "

답을 한 에스쿠로는 저를 쫓는 시선이 있음에도 밖으로 나섰다. 뒷모습을 쫓던 상대는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전화를 하며 계산서 아래에 얼마간의 돈을 껴 뒀다. 그가 전화를 끊자 뒤에서 나타난것은 중절모를 쓴 여인. 하얀 붕대를 꼼꼼히 감은 손이 제 턱을 감싸자 그는 어깰 한 번 으쓱였다.

" 이렇게 나타나시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알아들을겁니까, 페넷. "
" 옛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나는 싫지 않지만- "

순간 사내의 목엔 시퍼런 날이 다가왔다. 안개가 흘러가듯 물결무늬가 독특한 것은 다마스쿠스강으로 만든 가늘고 얇은 무기였다.

" 내 손은 싫어할텐데. "
" 진정하시죠, 에디야 시그도라. 일단 앉는게 어떻습니까? "
" 당신이 내는거겠지, 니그럼? "

고갤 끄덕이는 상대, 니그럼의 행동에 이시스는 방금 전 까지 에스쿠로가 있던 소파에 앉았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띄고 있지만 형형한 안광은 수 틀리면 뒷일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그래서,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
" 아저씨가 맡긴 일이 뭐야? "

잠시지만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지자 이시스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몸짓의 뜻을 아는 니그럼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 아시잖습니까, 이런 일은 비밀 엄수라는거. "
" 어머, 충직하신 분이야.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숨이 가라앉을텐데. "
" 그래도 안됩니다. 시그도라씨가 이야기 하는 아저씨가 어떤진 본인이 잘 아시잖습니까? "

협박도 회유도 먹히지 않자 혀를 찬 이시스는 차는 됐다며 냉큼 자리를 벗어났다. 아마 저보다 먼저 와서 나간이를 쫓는 듯 싶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느낌에 니그럼은 옷깃을 바로한 뒤 웃음소릴 흘리며 사라졌다.

-

에스쿠로를 쫓던 이시스는 갑작스런 통신에 발을 멈췄다. 그건 저만치 앞서 걷던 에스쿠로도 마찬가지였다. 통신회선에서는 평소의 오퍼레이터 목소리가 아닌 노이즈만 가득해 둘의 얼굴엔 의아함이 떠올랐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약간의 귀찮음이 섞여있는 표정이었다. 어깰 늘어뜨린 이시스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 여보세요, 또 채널 열어뒀지! 아 귀찮아진다고 몇 번을 이야기 해야해! 미끼는 무슨, 퍽이나 필요하겠다! "

크기는 작지만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로 향하자 반대편에선 낮은 웃음소리가 전해지자 이시스는 다시 한 번 소릴 지르곤 전활 끊어버렸다. 그 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앞서가던 에스쿠로가 되돌아왔다.

" 여긴 무슨 일인가, 이시스. "
" 앗, 아저씨! 무슨 일 이긴요. "

자신이 미행 한 것을 웃으면서 밝힌 이시스는 환히 웃어보였다. 머릴 짚고 고갤 흔든 에스쿠로는 앞장 서 기지로 향했다. 빠르게 옆에 붙은 이시스는 은근슬쩍 팔장을 끼며 물었다.

" 그래서, 뭘 맡긴거에요 아저씨? 살짝 알려줘요. "
" 네가 알 것 없는거다. "
" 에헤이- 귀뜸 줄 수도 있잖아요. "
" 너와 상관이 없는 것 까지 알려야 하나? "
" 궁금하니까요. "
" 신경 쓰지 말아라. "
" 그럼 기지쪽 일 이에요? "

스무고개를 하듯 계속된 질문에 지겨울 법도 했지만 에스쿠로는 꼬박꼬박 답을 해 주고 있었다. 기지에 도착할 때 까지 계속 된 질답은 안에 들어서서도 끊기지 않았다. 결국 두손 든 이시스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정말- 너무하잖아요. 스리슬쩍 알려주면 안되나요 아저씨? "
" 네가 알만한게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이시스. "

에스쿠로는 이시스의 볼멘소리를 배경음 삼아 지부장실에 들어갔다.

" 그래서- 이곳 북동쪽에 있는 곳에서 대기해라, 이거구만? "
" 관련해서 자료는 이미 다 공유했으니까 제대로 위치해, 이시스. "
" 네이네이,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

비꼬는 투지만 분명한 확인에 지부장은 고갤 끄덕였다. 장난스럽지만 할 때는 제대로 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지부장은 이시스를 향한 시선을 에스쿠로에게 돌렸다.

" 에스쿠로 ㅅ... 아니 에스쿠로 요원은 포인트를 알려 드릴테니 정찰 후 보고를 요청합니다. 총기류를 좋아하지 않으시는건 알겠지만 믿을만한 요원이 없어서 말입니다. "
" 알겠다. "
" 에? 아저씨 총도 써요? "
" 그럼 먼저 출발하겠다. 이후 통신을 연결하도록. "
" 이봐 아저씨!! "

물어보는 답은 완벽하게 무시한 채 나가버린 에스쿠로의 뒤에서 버럭버럭 소릴 지르는 이시스를 한심하다는 듯 보던 지부정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 그러고 보니 전할 말이 있었는데 먼저 나가셨군. 이시스, 나중에 선배님이랑 이야기 하게 되면 달로메 선배님께서 이번 작전 끝날때 쯤 오실거라고 전해줘. "
" 헤-? 그 아저씨 동생이라는 사람 말야? "
" 너한텐 대선배님이니까 앞에선 행동 조심하고. 선배님이 아니라 삼촌이려나? "
" 아악! 아악! 아악!! 그만해! "

귀를 막곤 소리지르는 행동에 낮은 웃음을 흘리던 크리스는 이만 가 보라며 축객령을 내렸다. 툴툴 거리며 밖으로 향한 이시스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주저앉아 귀를 막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단말마 같을 소릴 뱉었다.

" 이게 다 아저씨 때문이야! "

그 때, 보급 저격소총을 받아 정비하던 에스쿠로는 왠지 귀가 간지러워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