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Tearis 2018. 2. 26. 00:13

if 흑막썰

(그림 : 밀한님 https://twitter.com/milhan_cm/status/965170992640245760)


흔히 볼 수 있을 휴대전화를 든 손이 표면을 두드린다. 검은 액정만 보이던 전화기가 울자 손의 주인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몇 번의 터치로 답을 보낸다. 몇 번의 반복 후에 화면 액정을 끈 손이 내려온 안경을 치켜 올렸다. 길거리의 발소리 사이에 섞인 둔탁한 굽 소리가 손의 주인에게 다가와 그림자를 만들었다.



" 1분 전- "

" 설마, 늦으리라 생각 한 거에요? "


그림자 주인의 말에 안경 낀 이가 낮게 웃었다. 소음에 묻혀 명확하진 않았지만 상관 없다는 듯 상대는 말을 이었다.


" 아니, 오늘도 딱 약속 시간에 맞춰 오나 싶었어. "

" ... 싱겁기는. "

" 자세한건 안에서 이야기 하는 게 어때? 계속 서 있는것도 불편한데. "

" 좋아요. "


제안을 수락한 이는 기다리던 이와 함께 바로 옆 카페로 갔다. 문이 열리며 울리는 차임벨에 인사를 한 종업원을 보지도 않고 구석 진 자리로 향한 이는 떨어지듯 앉았다. 퍽- 하는 공기 빠지는 소리에 낮게 웃는 상대를 보던 이는 건너편 자리에 앉아 선글라스를 벗었다.


" 그래서- 어제 일은 어땠어, 혜야? 변수가 많았을텐데. "

" 제대로 수행 했어요. 벌써 몇 번을 같이 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질문인가요? "

" 물론 혜야가 실수 같은걸 할 린 없지만, 그냥 확인 하는거야. "

" 테아리스씨 태도가 나쁘단 건 아니지만 매번 묻잖아요. "


혜야-천혜야의 말에 테아리스는 웃음소릴 흘리며 메신저백에서 펜과 수첩을 꺼냈다. 기묘한 것이 가득했지만 익숙하다는 듯 손은 유려하게 움직여 더하고는 마침표를 찍었다. 종업원이 오자 음료를 주문한 천혜야는 턱을 괸 채 테아리스의 손을 보고 있었다.


" 항상 보지만 뭔지 모르겠어요. "

" 그러라고 쓰는거야. 동네 방네 떠들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


어깰 으쓱이는 테아리스의 행동에 천혜야는 미소를 진 채 고갤 끄덕였다. 저 수첩에 기록된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나누는 대화나 이후의 일 모두 타인에게 알려져서 좋을 건 없었다. 죽음으로 묻어버릴 것 이라면 모를까. 


"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


대화를 끊은 것은 종업원이 가지고 온 음료였다. 테아리스 앞엔 작은 에스프레소잔을 두고 천혜야 앞엔 맑은 붉은색이 담긴 유리잔을 내려뒀다. 둘 다 온기가 있는지 하얀 김을 띄웠다. 종업원이 돌아가고 나서 10초 가량 지나서야 천혜야는 잔을 집었다. 


" 그 차, 색은 예쁜데 맛이 미묘하더라. "

" 다섯가지 맛을 내기에 오미자五味子 라고 부른다고 이야기 해 줬던 것 같은데요. "

" 응, 했었지. "


고갤 두어번 끄덕인 테아리스는 제것을 한 모금 마시곤 내려놨다. 에스프레소 잔이 받침과 부딛쳐 잘각였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테아리스의 손이 멈추길 기다리며 차를 홀짝이는 천혜야의 시야에 조심스레 다가오는 여인이 보였다. 쭈뼛이는 게 곤란해 하는 것 처럼 보이자 몸을 돌린 그는 입을 열었다.


" 무슨 일 인가요? "

" 저기.. "


여인은 둘을 번갈아 본 뒤 말을 건 천혜야를 보곤 뭔갈 결심한 듯 주먹까지 쥐고 말했다.


" 혹시 두 분, 연예인.. 아니신가요? "

" 네? "


의외의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뜬 천혜야는 웃음소릴 흘리며 고갤 저었다. 


" 아니에요. 잘못 보셨나봐요. "

" 에.. 죄송합니다. "


당황한 여인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휘저은 혜야는 여전히 시선을 주지 않는 테아리스를 보고 있었다.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와 상관 없에 제 일에 매진하던 상대가 눈을 들자 혜야는 그제야 잔을 내려놨다.


" 다 끝났나요? "

" 응, 덕분에. 아까 그 사람은 뭐야? "

" 둘을 연예인으로 봤나봐요. "

" 뭐? "


천혜야의 말에 테아리스는 안경다릴 잡고 고치더니 한껏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샐까 입을 막는 모습이 장난치고 난 뒤 결괄르 보는 악동 같았다. 테이블 표변을 손으로 툭 툭 치면서 웃던 테아리스는 몸을 바로하고 안경을 다시 추켜올렸다.


" 와, 이런 이야긴 또 처음이야. 혜야가 너무 멋져서 그런 거 아냐? "

" 비행기 태우지 말아요. 그래봤자 나올 것 도 없고. "


테아리스는 에스프레소를 원샷 한 뒤에 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드를 꺼내 잠금을 해제한 뒤 화면을 띄워 혜야에게 내밀었다. 푸른 화면에 흰 색으로 선이 그어진 것을 보니 블루 프린트Blue Print, 청사진 이었다. 패드용 펜을 꺼낸 테아리스의 손은 청사진 곳곳에 표시하고는 목소릴 낮춰 말했다.


" 이 두곳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 VIP는 이쪽과 이쪽에서 출입해. 경계 시작 시간은.. "

" 그렇다면 아예 시간 전에 도착해서 이쪽을.. "


청사진 몇 개를 오가며 설명하는 테아리스와 들으면서 의견을 내는 천혜야의 모습은 다른 테이블에서 보면 중요한 사업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보였다. 다른 테이블을 찾는 사람들이 몇 번 바뀔 때 까지 둘은 열띈 토론을 했고 패드 화면의 청사진은 온갖 색으로 덮였다.


" 좋아- 그럼 이렇게 가자. "


바닥을 보이는 찻잔을 들었다 놓은 천혜야는 선그라스를 집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 걱정 말아요. 알잖아요? 내 실력. "

" 잘 알지. 그러니까 잘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