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Eoschron 2017. 10. 31. 19:43

[Eoschron] 그 나름의 할로윈

<매 년 10월의 마지막날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고.. >


아직 임무를 받기에 적합치 않다는 의사의 판단 하에 재활훈련을 빙자한 혹사를 마친 에스쿠로는 훈련실에 딸린 샤워실에 있었다. 뿌연 김이 서린 거울엔 흐릿한 인영만 존재했다. 막 샤워실을 나가려던 그는 등을 스치는 서늘함에 고갤 돌렸다. 허나 그의 눈에 비친것은 빈 샤워실과 아직 습기가 가시지 않은 거울 뿐 이었다. 고개를 모로 기울였던 에스쿠로는 제 짐을 가지곤 숙소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증기가 가라 앉았을 때, 붉은빛의 형체가 거울에 비쳤다 사라졌다.




음료수나 마실 요량으로 휴게실로 향한 에스쿠로는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곤 다가갔다. 해골 인형이나 어디서 가져왔을지 모를 줄로 거미줄을 연출하고 군데군데 티 라이트가 켜져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꾸미는 것을 주도하던 이가 뒤로 돌았다.


" 이게 다 뭔가? "

" 응-? 아하, 몰라? 오늘 10월 31일이잖아. "


상대의 질문에 날짜를 답한 이는 기묘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모양새는 물론이고 옷 역시 작업복이 아닌 달라붙는 전신 타이즈에 이런저런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물끄러미 상대를 보던 그가 모르는 것 같자 상대는 제 머리를 짚고 과장된 움직임을 보였다.


" 이럴수가! 요즘 세상에 할로윈을 모르는 이가 있다니 충격이야! "

" 할로윈? "

" 산 자와 죽은자의 세계가 가장 가까워 지고 경계가 희미해져 죽은 자가 친인 곁으로 돌아온다는 날이지. 멕시코의 죽음의 날 DÍA DE MUERTOS 전야기도 하고. "

" 흠, 그렇군. "

" 아이들이 코스튬을 입고 사탕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구걸하러 다니기도 해. Trick or Treat! 하면서 말이지. 혹은 이렇게 꾸미고 파티를 하지. "

" 그래서 지금 그 모습과.. "


에스쿠로는 꾸며진 곳을 턱짓했다.


" 이것은 그 날을 즐기는 방법인가? "

" 그런 셈이지! "


옛날 만화영화에서나 볼 법한 고깔모자를 내미는 YT의 손을 보던 에스쿠로가 휴게실을 빠져 나가자 뒤이어 볼멘 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소리의 주역은 YT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에스쿠로는 희끗한 것을 본 것 같다며 걸음을 멈췄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창이 있는 복도. 해가 진 아티라우 기지 밖은 몇몇 불빛을 제외하곤 어둠 뿐 이었다. 창에 비친 저를 바라보던 그는 복도로 시선을 돌렸고 명확한 형체 하나를 볼 수 있었다.


" 누가 있나? "


대답이 없자 그는 다가가 보기로 하곤 움직였고 상대 역시 거리를 두었다. 간극이 전혀 좁혀지지 않자 에스쿠로는 어깰 한 번 으쓱 인 뒤 신경을 끄고 숙소를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뭔가, 이건. "


기지 복도를 인식하고 있던 시야에 들어온 희뿌연 형체들이 그를 감쌌다. 눈을 깜빡이고 오른쪽의 의안의 기능을 활성화 해 봤지만 형체들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기능을 끄고 시선을 맞추자 연기 같던 그것들은 하나씩 온전한 사람의 모양새를 갖췄다. 그는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가장 납득할 만한 답을 내었다.


" 누가 홀로그램이라도 깔아 둔 건가. 장난이 지나치군. "


「 죽은자가 잠시 돌아오는 날 이라지, 에스쿠로. 」


형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자 그의 입은 닫혔다. 다양한 외모, 나이대를 가진 형체들은 각자 입을 열었다.


「 잘 지내서 다행이군. 」

「 오랜만이야! 」


한쪽 뺨을 두드려본 그는 꿈은 아니라 생각한 뒤 작금의 상황을 판단 해 보기로 했다.


1. 이전처럼 '뇌파'를 조정해 현실같은 환상을 보던가

2. 부상의 여파로 헛것이 보이던가

3. (믿기는 힘들지만) 죽었던 이들이 제 눈 앞에 돌아왔던가


그가 기억하기로 아티라우 기지 내 별 다른 것이 있다는 건 모르기에 1번은 기각, 2번 역시 헛것을 본다기엔 너무 생생했다. 얼굴을 쓸어내린 그는 앞의 형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 그러니까... 이게 지금 꿈은 아니란 이야기군. "

「 꿈이라기에 너무 생생하지 않나. 」

" 그렇지. "

「 깜짝 이벤트라고 생각 해! 그나저나 많이 컸다? 」


그에게 많이 컸다고 한 인영은 소년병 시절의 친우였다. 죽은 자가 돌아온다는 날 이라며 웃은 이는 이름을 준 조교였고, 저와 같이 문신을 했던 군 동료에 드물게 친하게 지냈던 상관도 있었다. 그의 기억에서 서슴없이 '친구'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미 스러진 자들이었다. 눈가를 손으로 덮은 채 낮게 웃던 에스쿠로는 손을 치우며 말했다.


" 그래, 시간이 지났지. 살아있는 이상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

「 그거면 되었다. 」

「 넌 이쪽에 빨리 오지 말아라. 최대한 느지막이 오라고. 」

「 놀고 싶지만- 그래도 날 기억해줘서 고마워! 」

「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고. 넌 그때나 지금이나 딱딱하다니까. 」


할 말을 다 했는지 인영들은 사라졌고 그는 평소와 같을 기지 복도에 서 있었다. 그들이 있던 곳을 보던 에스쿠로는 낮은 한숨과 함께 멈춘 발을 움직였다.


" 죽은 자가 돌아온 날... 이란 말이지. "